-라이프 스타일 크리에이터로 불리고 싶어..."건강한 라이프 스타일 선도하고파"
-학창시절 '수원 얼짱 쌍둥이'로 유명..."연예인보단 운동 전문가 되고파"
-고교시절 이례적 스카우트 제의로 체대 준비...트레이너로 첫 걸음
-미국서 교통사고 후 운동으로 후유증 극복...피트니스 대회 휩쓸며 '머슬퀸'으로 유명세
-SNS·유튜버 스타 "나만의 운동 스타일과 전문성 공유하고 싶어"
-2년 간 연애 끝 9월 1일 결혼식...'품절녀' 합류 "예비신랑? 위트 있고 센스 넘쳐"
스포츠 트레이너 심으뜸은 "'건강한 라이프스타일 크리에이터'로 불리고 싶다"고 말했다./사진=박상훈 기자
[인터뷰365 김리선 기자] "사고 후 살기 위해 시작한 운동이 필라테스였어요. 정말 생존을 위해서였죠."
스포츠 트레이너이자 '만능 운동꾼' 심으뜸(29)은 심각한 얘기를 하면서도 밝고 에너지가 넘쳤다. 심으뜸의 20대는 '도전'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 도전에는 고교시절부터 11년을 이어온 운동이 늘 함께했다.
20대 초반 미국 여행 중 겪은 대형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은 그는 필라테스로 아픔을 이겨냈다. 운동을 쉬면 여전히 통증을 느끼지만 "그 사건을 통해 살아있는 것 만으로도 감사함을 느꼈다"고 담담히 말했다.
그리곤 보디빌더로 변신, 각종 피트니스 대회에서 수상을 휩쓴 그는 '애플힙''엉짱' 등의 수식어로 각종 방송과 광고로 유명세도 탔다.
스포츠 트레이너와 피트니스 선수로 활약해온 그는 SNS에서 20만명 이상의 팔로워를 이끄는 '스타' 운동인으로 자리매김했다. '비키니 다이어트'의 책을 쓴 저자이자, 현재 생활스포츠지도사 수험서도 집필 중이다.
최근엔 유튜브로 활동 범위를 넓혔다. 자신만의 운동법을 공유하는 '건강 전도사' 유튜버로서도 활동하고 있다. 건강하게 스트레스 없이 행복해지고픈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한 목적에서다. '건강한 라이프스타일 크리에이터'로 불리고 싶다는 심으뜸을 최근 서울 이태원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만났다.
스포츠 트레이너 심으뜸/사진=박상훈 기자
◆"라이프 스타일 크리에이터로 불리고 싶다"...'스타 유튜버'로 활약
- 스포츠 트레이너, 피트니스 선수, 유튜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데.
그동안 필라테스 강사라고 말했는데, 지금은 여러분야에서 활동을 하다보니 '스포테이너'(엔터테인먼트와 스포츠의 합성어인 신조어)라고 불린다. 앞으로는 많은 분들께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을 이끌어주고 싶다는 생각에 '라이프 스타일 크리에이터'라고 불리고 싶다. 운동 분야에서 저만의 운동 스타일과 전문성을 공유하고 소통을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에서 유튜브도 시작했다.
-SNS와 유튜브로 소통에 적극적이다.
유튜브는 1년 간 차근 차근 준비했다. 제가 한분 한분 만날 수 없으니, 다양한 운동으로 건강한 에너지를 어떤식이든 드리고 싶더라. 블로그나 인스타그램 등 SNS으로도 팬들을 만나긴 하지만, 영상을 통하면 리얼하게 소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더라. 유튜브 방송 시작 한달만에 스쿼트나 힙업운동 등에서 키워드 1위에 올랐다. 구독자수도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 3월에 시작한지 5개월만에 벌써 6만명을 넘어섰다. 많은 곳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더 잘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기 비결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요령을 부리지 않고 콘텐츠 하나하나를 솔직하고 소중하게 담으려 했다. 섬세하게 잘 가르쳐준다는 피드백이 많더라. 나 역시 확신이 생기더라. 방송 활동을 하면서 순발력이나 민첩성, 임기응변이 내 강점이란 걸 알았다. 운동을 설명 할 때 대본을 준비하지 않고 생각나는대로 말하는데 NG가 안난다. 운동 분야에서 가장 손꼽히는 '톱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은 소망이다. 결혼 후에는 육아나 뷰티, 일상을 아우르는 컨텐츠를 보여드리고 싶다. 우선은 운동 분야에서 확실히 자리를 잡는 게 목표다.
◆ '엉짱'수식어? 노력을 통해 일군 결과...뿌듯
-가장 자신있는 운동은
웨이트 트레이닝(근육운동), 필라테스, 요가 모두 나름의 매력이 있다. 다 좋아하다보니 모든 운동을 아우를 수 있겠더라. '스쿼트'운동으로만 1000개의 컨텐츠를 만들 수 있는 자신도 있고. 어떤 강의 요청이 들어와도 프로그램을 구성 할 수 있다. 대본이 없어도 진행할 수 있다.
-'애플힙'이 트레이드 마크로 꼽힌다. '엉짱'이란 수식어를 들으면?
그만큼 노력을 했고, 성과를 냈다는 점이 뿌듯하다. 운동과 노력을 통해 일군 결과를 인정해 주신 것 같아 기분 좋다.
-하루에 스쿼트 1000개를 한다고 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24살때 피트니스 대회 준비를 하면서 유산소 대용으로 효과를 낼 수 있는 운동을 찾다가 우연히 시작 하게 됐다. 처음엔 200개, 그 다음엔 300개로 늘려나가면서 1000개를 도전했는데 되더라. 매일 하지는 않는다. 매일 하면 효율이 떨어진다. 꾸준히 할 때는 매주 1번 씩 했었다.
-어릴 적부터 건강했나
사실 태어날 때부터 면역력이 약했다. 1~2살때 폐렴에 걸린 적도 있고 설사병이나 장염을 달고 살았다더라. 지금이 164.7㎝키인데 중학교 1학년때는 140㎝여서 앞에서 3-4번째 섰으니까.
스포츠 트레이너 심으뜸/사진=심으뜸 인스타그램
◆고교시절 이례적 스카우트 제의로 체대 준비...트레이너로 첫 걸음
-운동인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고교시절 은사님의 권유로 처음엔 퍼스널 트레이너로 시작했다. 초중고교시절 운동신경이 탁월했다. 학교에서 달리기 1등을 놓치지 않았다. 고등학교(수원 영덕 고등학교) 때 달리는 내 모습을 보고 다들 "미쳤다"고 할 정도였다.(웃음) 당시 체대 입시반을 담당하셨던 조호민 선생님께서 "넌 하면 무조건 된다"며 스카우트 제안을 하셨는데, 당시 스카우트 제의는 이례적이어서 전 학교에서 이슈가 됐을 정도였다. 뒤늦게 3학년 때 체대 입시를 준비했다.
대학교(동덕여자대학교 체육학과)를 들어가선 후배들의 운동을 도와주기 위해 모교를 찾았다가 이길한 선생님께서 '퍼스널 트레이너'를 해보라고 권유하시더라. 그래서 트레이너의 첫 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제가 운동을 할 수 있었던 건 은사이신 조호민 선생님과 이길한 선생님 덕분이다. 늘 감사한 마음이다. 현재 장학사로 계신데, 여전히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트레이너 생활은 어땠나.
대학생이던 20살 때 무작정 시작했다. 겨울에 시작해 그 이듬해 휴학하고 전문 자격증을 땄다. 본격적으로 호텔에서 트레이너 생활을 시작했는데, 설움도 많았다. 어려보이는데다 목소리까지 더 어리다보니 마치 어린아이 취급하더라. 실력을 인정받기까지 편견을 부딪히며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그러면서 더 단단해진 것 같다.
스포츠 트레이너 심으뜸/사진=박상훈 기자
-또래에 비해 사회 생활을 일찍 시작한 셈인데.
트레이너 생활과 학교 생활을 병행하다보니 너무 지치더라. 그러다 보니 20대 초반에 심각한 슬럼프가 왔다. 사람들의 부담이나 기대를 내려 놓고 휴식을 갖고 싶었다. 그래서 무작정 떠난 곳이 싱가포르였다. 첫 해외여행이었는데, 너무 좋더라. 그리곤 당시 번 돈으로 들어놓았던 보험을 중도 해약해 돈 300만원으로 언니가 유학 중이던 미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제가 그런 '한방'이 있다.(웃음) 그런데 미국에 도착한지 일주일 만에 언니와 둘이 자동차 여행에 나섰다가 대형 사고가 난거다.
-어떤 사고말인가.
샌프란시스코 여행 도중 언니가 졸음 운전을 하다 차가 전복 됐다. 차가 세바퀴 정도 굴렀다더라. 다행히 도로 쪽이 아니어서 2차 사고는 없었다. 내가 앉아있던 차 오른쪽이 크게 찌그러졌는데 차 문이 안 열릴 정도였다. 새벽에 화물차 운송하시던 분이 와서 도와줬다더라. 운전석 옆 좌석에 앉아있던 난 정신을 잃은 후 헬리콥터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는데, 정신이 들자마자 안되는 영어로 언니는 괜찮은거냐고 울부 짖었다. 언니는 다행히 많이 안 다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미국서 교통사고로 중상...필라테스로 이겨내 "살아있는 것 만으로도 감사"
-어느 정도의 부상이었나.
당시 난 머리에 큰 충격을 받았다. 머리엔 피가 철철 흘렀고 목과 모든 경추에 디스크가 왔다. 사고 다음날 고개 뿐 아니라 눈 조차 돌리지 못했다. 신체 오른쪽에 큰 충격을 받았는데, 손가락 뼈는 부서지고 폐에는 멍이 들었다. 언제 뇌졸증이 올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부모님께는 걱정하실까봐 사고났다는 말을 못하고, 미국에 거주하시는 이모와 이모부께서 한 걸음에 달려와 돌봐주셨다. 내가 뼈가 튼튼한 편이라 다행히 빠르게 회복 되더라. 한 달 후에 한국에 왔는데, 귀국 전 손에 깁스를 한 상태로 라스베이거스 여행을 갔으니까.
-타지에서 큰 일을 겪고나니 심정은.
아프면 아무것도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인생의 전환점이랄까. 살아있는 사실 만으로도 감사했다. 몸이 아프면서 건강에 눈을 뜨게 됐고, 어린 나이부터 건강에 관심을 갖게 됐던 것 같다. 내가 아프면 부모님도 너무 힘들어하시니까 그것도 힘들더라. 한국 병원에서 수술하고 항생제 부작용으로 너무 고통스러웠던 적이 있었다. 죽을 것 같았다. 밤에 잠을 못자고 괴로워하니 엄마가 옆에서 우시는데, 너무 속상하고 마음이 아팠다.
스포츠 트레이너 심으뜸/사진=박상훈 기자
-현재 건강은 괜찮은건가
뼈가 잘못 붙어서 한국에 돌아온 후 손가락 수술을 했다. 지금 오른손 손가락 뼈 두 개가 가라앉아 있는데 다 펴도 모양이 다르다. 교통사고 후유증도 생겼다. 비오기 이틀 전이 되면 땅에서 온 몸을 막 끌어당기는 느낌이랄까. 눈이 안 떠지고 목이 끊어질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운동을 안하면 안 된다. 정말 생존을 위한 운동이나 마찬가지다. 지금도 필라테스를 한 두 달 만 쉬어도 바로 아프다. 사고 후 필라테스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도 재활적인 측면이 크다. 근육 운동과 달리 필라테스는 목부터 꼬리뼈까지 척추를 분절시켜주는 운동이다.
◆'머슬퀸'으로 유명세...더 많은 경험 위해 미련없이 대회 떠나
-필라테스 강사로 활동하다가 피트니스 선수로도 활약했는데 계기는
(심으뜸은 첫 피트니스 대회 출전인 2014 WBC 하반기 대회에서 피규어 1등, 모델 1등, 전체 여자 VIP를 거머쥐며 혜성같이 등장해 주목받았다. 이후 머슬마니아 코리아 피규어 미디움 2위(2014), GNC 머슬펌프 나바 WFF 코리아 챔피언십 스포츠모델 프로 1위(2015), 나바코리아 아시아 서울 오픈 챔피언쉽 스포츠 모델 코리아 프로 1위(2016)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트레이너로 활동하면서 몸을 한 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필라테스 강사를 하면서 24세에 머슬 대회 기사를 접했는데 매력적으로 보이더라. 지금 아니면 못한다는 생각으로 피트니스 대회를 준비했다. 이듬해 2014년 경험상 나간 첫 대회인 WBC피트니스대회에서 피규어 부문과 스포츠 모델 부분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전체 여자 VIP를 해서 처음으로 3관왕에 올랐다. 아쉬움도 남고 도전을 더 해보고 싶어서 그 다음 해에도 나가게 됐고, 2016년 나바코리아 아시아 오픈 챔피언십 대회를 마지막으로 출전했다.
-2016년을 끝으로 대회 출전을 안한 이유는
내가 원하는 만큼 이뤘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아쉬움이 없다. 피트니스 분야에서 모든 경험을 해 봤고, 업계의 흐름도 눈에 보이고. 앞으로 나아가서 더 많은 경험을 해야할 때란 생각이 들더라.
-운동인으로서 쉼 없이 달려왔다.
하고 싶은게 있으면 무조건 하는 스타일이다. 결단을 내리고 진행하는 추진력이 워낙 빠르다. 혹여나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후회는 없다. 실패한 경험을 통해서라도 성장하니까.
스포츠 트레이너 심으뜸/사진=심으뜸 인스타그램
-운동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나.
대회 준비 할 때는 싫어도 운동을 해야하고, 피곤해도 해야하니 힘들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운동에 대한 강박증이 없다. 운동하는걸 좋아하는데다, 항상 해오던 패턴대로 하면 되니까. 건강적으로 무리다 싶으면 쉰다. 지난 한달 간 아프면서 1주일간 헬스장에 가질 못했다. 집에서 홈트레이닝을 하거나, 제 유튜브를 틀어놓고 영상을 보면서 따라하는 시간을 가졌다. 대신 직업상 운동 촬영이 많은데다, 백화점이나 기업 출강시 함께 운동을 해야하는 경우가 많으니 자연적으로 활동량이 많다.
◆ 학창시절 '수원 얼짱 쌍둥이'로 유명..."연예인보다 운동 전문가 되고파"
-피트니스 대회 수상을 계기로 '머슬퀸 프로젝트'와 '출발 드림팀' 등 각종 방송 활동과 광고 등으로 유명세도 탔다. 연예계로 진출할 생각은 없나.
사실 '수원 얼짱 쌍둥이'로 유명했다.(웃음) 길거리 캐스팅 제안도 많았다. 엄마가 못하게도 했지만, 나 역시 앞에 나서는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25살에 첫 피트니스 대회를 나가면서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을 알게됐다. 웅변대회도 나가본 적 없는 내가 머슬 대회에서 비키니를 입고 무대에 올랐는데 전혀 안떨리더라.(웃음) 이후 광고 촬영도 하게 되고 점점 경험이 쌓이다보니 노련함도 생기고 말도 술술 나오더라.
방송활동을 열심히 하다가 어느 순간 고민이 되는거다. 7여년간 운동으로 전문성을 쌓아왔는데, 방송 쪽으로 향해 있는 내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 것이다. 아직 경험을 많이 해야할 나이고, 내 전문성을 더 다져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방송을 하면서도 감을 잃기 싫어서 빠듯한 시간 속에서도 필라테스 레슨을 해온 이유도 운동의 끈을 이어가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남들이 보면 욕할지언정 TV 방송 활동은 안해도 된다는 생각이었다. 내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틈틈히 시간을 쪼개 재작년에도 추가로 필라테스 레벨3 자격증을 취득 했다. 방송보다는 운동으로 방향을 바꿔서 다시 운동 영역으로 활동을 하고 콘텐츠를 키우게 됐다. 결정적으로 유튜브를 하면서 요가, 필라테스, 재활에 좀 더 집중을 해서 한 번에 아우를 수 있도록 운동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또 현재 국가공인자격증 생활스포츠지도사 자격증 수험서도 집필 중에 있다.
먼 훈날 머리가 하얗게 되더라도 누군가에게 필라테스를 가르치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40-50대가 되더라도 사람들 앞에서 강연을 하고 있을 것 같다.
스포츠 트레이너 심으뜸의 강의 모습. 심으뜸이 올린 SNS사진 옆에는 "강의할 때 만큼은 내 앞에 있는 사람들과 나의 교감에 집중한다. 주어진 강의 시간동안 이 사람들을 내가 끌고 가야 하며, 지루한 강의보다 에너지가 느껴지는 그런 강의를 추구한다"라고 적혀있다./사진=심으뜸 인스타그램
-바쁜 일상을 보내는 것 같다.
11년 째 운동을 하다보니 습관이나 생활 패턴 자체가 부지런한 편이다. 잘 때 외에는 눕지 않는다. 대신 밤에 숙면을 잘 취한다. 평균 새벽 1~2시에 잠이 들면 오전 6시30분에서 7시 정도에 눈이 저절로 떠진다. 한창 바쁠 때는 3~4시간만 잤는데, 이젠 평균 6시간은 채워 자려고 한다.
필라테스 강의를 하루에 10~13시간 한 적도 있는데 그러다보니 성대 결절도 왔다. 강의를 하면 돈을 많이 벌긴 하지만, 저를 위한 방식은 아닌 것 같더라. 돈에 큰 욕심은 없다.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거니까. 행복하게 베풀면서 살자는 주의다.
◆ 2년 간 연애 끝 '품절녀' 합류..."예비신랑? 위트 있고 센스 넘쳐"
-지난 7월 SNS를 통해 깜짝 결혼 발표를 했다. 결혼을 축하한다. 심정이 어떤가.
결혼 날짜는 지난해 12월에 잡았고, 지난 6월 부터 결혼 준비를 했다. 그동안 너무 바쁘다보니 실감이 안난다.
-몸매 관리는 더 신경쓰고 있나.
사실 지난 한 달 간 몸이 안 좋았다. 기침이 계속 나와서 외출을 되도록 삼가고 있다. 원래 기관지가 약했는데, 최근 감기로 기침이 나오더니 기관지염 증세가 생겼다. 기침 하면서 결혼식에 들어갈까봐 주변에서 다들 걱정하시더라. 식단 조절도 안하고 신경을 안 썼는데 요즘 몸무게가 빠졌다. 결혼 전 일주일 동안 관리하려고 한다.
-예비 신랑을 소개한다면
4살 연상으로, 형과 함께 피트니스를 운영하고 있다. 20세부터 휘트니스 분야에서 영업을 하다가 24세부터 사업을 시작해 자수 성가한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심지가 단단하고 그릇이 크다. 그런 점이 존경스럽다.
9월 결혼에 앞서 SNS에 공개한 스포츠 트레이너 심으뜸 웨딩사진/사진=심으뜸 인스타그램
-연애스토리가 궁금하다.
대회 준비를 위해 남자친구가 운영하는 피트니스를 방문하면서 첫 인사를 하게 됐다. 수려하고 단정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1년 반 동안 인사만 하다가 2016년 4월에 약속했던 한 분이 못나오면서 어쩌다가 둘만 만나 저녁을 먹게 됐다. 양꼬치 칩에서 세 시간 동안 얘기를 했는데, 잘 알지도 못한 사람한테 마음을 열고 솔직하게 얘기하는 제 모습을 보고 오빠가 충격을 받았나 보더라. 나중에 들었더니 계산적이지 않은 해맑은 모습을 좋게 봤다더라. 그리곤 그날 밤에 제 꿈을 꿨다면서.(웃음)
그로부터 두 달 뒤 사귀기 시작해서 사귄지 한 달만에 제가 먼저 오빠와 결혼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그래서 오빠가 저를 더 진지하게 대했던 것 같다. 2년 넘게 매일 만났는데 너무 좋더라. 우린 서로 숨기는게 없어서 솔직하다 못해 투명한 사이라고 표현한다.
-어떤 점이 좋던가.
사실 처음부터 괜찮았다. 위트도 있고 센스가 있더라. 같이 운동이란 공통분모가 있으니 고충에 대한 공감대도 맞고. 알면 알수록 매력적이었다. 둘 다 가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도 와 닿았고. 2년간 만나면서 오빠는 저로 인해 더 밝아지고 솔직해졌고, 나 역시 심으뜸이란 사람으로서 한 뼘 더 성장했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 관계가 궁금하다.
부모님과 세 자매다. 1살 터울 언니와 일란성 쌍둥이다. 엄마가 마치 세 쌍둥이를 키우신 거나 다름없으시다. 힘드셨을 껄 아니 엄마한테 더 잘 하려 한다.(웃음) 1분 차이로 내가 언니인데, 집에선 둘째이자 아들 역할 노릇을 한다. 동생과는 얼굴은 같아도 성격이 다르다. 제 친한 친구들이 동생 친구들이기도 하고. 동생은 2년 전 결혼했고, 언니도 내년 결혼을 앞두고 있다. 사위 셋이 생기니까 부모님도 든든해 하시고, 뿌듯해하시더라.
-자매들과 친한가
너무 친하다. 언니가 영어도 잘하고 나와 대화코드도 잘 맞다보니 함께 여행가는 걸 좋아한다. 동생 결혼기념 여행, 언니 생일 기념 여행 등 셋이 국내외로 여행을 잘 다닌다. 동생도 애틋하다. 학창시절에도 동생이 어려운 일이 있으면 내가 나서서 처리해주고 보호자 역할을 자처했다. 동생 결혼식 전날에는 서로 부등켜 울었는데, 결국 다음날 둘다 얼굴이 부었더라.(웃음)
◆"머리가 희끗희끗해도 여전히 강연하고파"
-10년 후의 심으뜸은 어떤 모습일까.
결혼은 제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를 통해 새 가족이 생기고 육아, 출산을 경험하고, 또 사람들과 소통을 하다보면 40대가 됐을 때 지금보다 마음이 큰 사람이 되어 있을 것 같다. 제가 심리에 관심이 많다. 고민을 들어주고 피드백도 해주고픈 마음도 있다. 그리고 한결 같은 내가 되고 싶다.
-앞으로의 계획은.
내가 뛰어난 건 운동신경 밖에 없는데 시대를 잘 타고난 것 같다. 다양함을 선호하는 시대에 태어난 덕분에 제 역량을 충분히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까. 앞으로도 제가 잘 하는 걸 잘 키워나가고 싶다.
또 이왕이면 최대한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싶다. 전세계로 뻗어나가고 싶다. 그래서 유튜브를 하는 거고, 지금 영어 공부도 하고 있다. 영어로 방송을 하고 싶어서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긍정적으로 전달되면 그 이상의 욕심이 없다.
결혼이란 제 2의 인생을 곧 시작하는 만큼 좋은 며느리, 좋은 엄마, 좋은 아줌마가 되서 후에 연애, 결혼, 운동, 자기관리, 정신력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룰 수 있는 좋은 강연자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