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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좀 더 어려져도 된다

작성자 : 커리어셀 작성일 : 2018-09-11 조회수 : 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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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의 이승우 

 

웨일스 축구가 결과 말고 좀 다른 이유로 주목받고 있다. 어린 선수들의 과감한 기용이다.

 

웨일스 대표팀은 이번 A매치 기간에 아일랜드, 덴마크와 유럽 네이션스리그 경기를 가졌다. 아일랜드전은 4-1로 이겼고 덴마크전은 0-2로 졌다. 결과는 반타작이었지만 웨일스 팬들의 기대를 산 건 따로 있었다.

 

웨일스는 이번 A매치 2연전을 통해 10대 혹은 20대 초반의 선수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첼시의 유망주 이선 암파두(만17살)를 비롯해 매튜 스미스(만18살 맨시티-트벤테 임대) 벤 우드번(만18살 리버풀-셰필드 유나이티드 임대) 타일러 로버츠(만19살 리즈 유나이티드) 크리스 메팜(만20살 브렌트포드) 데이비드 브룩스(만21살 본머스) 등이 선발 혹은 교체로 웨일스의 주력으로 뛰었다.

 

특히 수비형 미드필더 암파두와 센터백 메팜은 2경기 연속 선발로 나서 안정된 기량을 보여주면서 기대를 높였다. 미숙한 플레이도 있었으나 잠재력 충분한 재능이었다.

 

물론 웨일스가 어린 선수들로만 대표팀을 꾸린 것은 아니다. 개러스 베일(레알 마드리드)과 애런 램지(아스널)와 같은 베테랑 선수들이 중심을 잡고 어린 선수들이 뒤를 받치는 신구 조합의 형태였다. 스무 살 안팎의 선수들이 주눅 들지 않고 뛸 수 있었던 것도 베일이나 램지와 같은 베테랑 선수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베테랑 선수들의 뒷배가 있었더라도 어려도 너무 어린 선수들의 중용이었기에 웨일스의 이번 선수기용은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감독 긱스가 10대 중용한 3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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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일스 대표팀의 라이언 긱스 감독

 

 

웨일스가 이처럼 어린 선수들을 적극 중용한 직접적인 배경은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에 따른 세대교체 필요성이었다. 웨일스는 유로2016에서 4강 돌풍을 일으켰지만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본선에는 오르지 못했다. 1958년 대회 빼고 본선에 오르지 못한 웨일스의 월드컵 실패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었지만 유로2016의 기억이 너무나 강렬했던 웨일스로선 러시아 대회 진출 무산이 더 뼈아팠다. 다음 기회를 바라보는 웨일스에게 세대교체는 그 준비의 시작이었다.

 

웨일스의 어린 선수 중용의 표면적 이유가 세대교체 필요성 때문이라면, 내부적으로는 좀 더 복잡한 셈법이 깔려있는 선택이다.

 

웨일스 대표팀의 감독은 맨유의 전설인 라이언 긱스다. 긱스는 올 1월 크리스 콜먼의 후임으로 웨일스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다. 긱스 감독은 웨일스 대표팀을 재구성하면서 선수 변화, 특히 어린 선수 중용에 힘을 집중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경쟁의 유도다. 영국 연방 중에서도 규모가 작은 웨일스는 선수 숫자 면에서도 넉넉하지 못하다. 같은 선수들로만 너무 오랫동안 대표팀을 꾸려나갈 경우 팀이 자칫 느슨해질 위험이 있었다. 긱스 감독은 소속팀에서 아직 주전으로 뛰고 있지 않더라도 과감하게 10대 선수들을 발탁, 중용해 부족한 선수 풀을 채우고 내부 경쟁을 유도해냈다. 첼시의 암파두도 주전으로 뛰고 있다고 대표팀에 뽑은 게 아니었다.

 

둘째, 선수 개인의 성장이다. 재능 있는 선수일수록 더 높은 수준의 환경에서 더 강한 상대와 자꾸자꾸 맞서 싸우는 경험을 갖는 게 중요하다. 그 재능을 계속해서 자극하고 폭발시켜 더 높은 단계로 올라서는 과정이다. 물리적 나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재능에 맞는 레벨에서 경험을 쌓아가고 높여가는 일이다. 이 같은 유망주의 성장 전략은 긱스의 스승 퍼거슨 감독이 현역 때 무엇보다 잘했던 일 중 하나기도 하다. 맨유 출신의 박지성도 선수마다의 재능에 맞는, 물리적 나이에 매이지 않는 ‘월반’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했다.

 

셋째, 계기다. 긱스 감독은 어린 선수의 중용 이유 중 하나로 “선수 개인에게도 자극이 될 수 있지만 그 선수의 소속팀이나 다른 빅 클럽에서 이 선수를 챙겨보거나 주목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대표팀 활약이 소속팀의 기회로 이어지거나 다른 리그나 클럽의 관심으로 확대돼 해당 선수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모멘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웨일스와 긱스 감독의 판단이다.

 

좀 더 기다렸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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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팀의 파울루 벤투 감독

 

 

우리 문제로 돌아와 보면,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번 A매치 주간에 아시안게임 멤버인 20대 초반의 이승우(만20살), 김민재(만21살), 황희찬(만22살), 황인범(만21살), 김문환(만23살), 송범근(만20살) 등을 선발하고 중용하는 건 웨일스 사례와 묶어 보더라도 의미 있는 일이다. 새로 시작하는 대표팀 모두에게 기회와 자극이 될 수 있어서다.

 

하지만 길게 돌아보면 한국 대표팀은 근래 어린 선수들을 쓰는데 소극적이었던 게 사실이다. 예전만 하더라도 10대 나이에 A매치에 데뷔하는 게 낯선 장면이 아니었지만 근래엔 그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나이 어린 재능이 그만큼 줄어든 것 아니냐고도 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비판적인 문화가 만든 결과에 가깝다. 그게 무려 평가전이라도 조금이라도 내용과 결과가 좋지 못하면 가차 없이 흔들어 버리는 분위기 속에서, 길게 보며 어린 선수들을 중용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벤투 감독은 이제 막 시작했으며 이번엔 좀 더 길게 시간을 주고 기다려주었으면 한다. 결정적 하자가 아니라면, 바람만 같아서는 한 감독으로 4년을 꼬박 준비해 월드컵 본선을 치르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렇게 길게 갈 수 있어야, 그 과정이 보장되어야 어린 선수도 중용하고 전술 실험도 가져가며 경쟁이건 계기건 마련할 것이 아닌가. 

 

그러니 한국 대표팀은 좀 더 어려져도 된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모두 좀 더 기다렸으면 한다.

 



 

기사제공 박문성 칼럼

 

출처 박문성칼럼 https://sports.news.naver.com/wfootball/news/read.nhn?oid=208&aid=0000001317&viewType=COLUM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