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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10라운더의 ‘기적’을 이룬 일본 독립리그 코치와 선수

작성자 : 커리어셀 작성일 : 2018-09-11 조회수 : 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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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독립리그 도치기 골든브레이브스의 김무영 코치(왼쪽)와 한선태.(사진=한선태 제공)>

김무영(33). 부산 대신중학교 졸업 후 일본 시모노세키에 있는 하야토모 고교로 야구 유학을 떠났다. 후쿠오카경제대를 졸업하고 일본 독립리그에서 야구를 이어가다 2008년 신인드래프트 6순위로 소프트뱅크에 입단하게 된다. 그러나 팔꿈치 통증으로 2015년 10월 전력 외 선수로 분류되면서 팀을 나왔다. 라쿠텐 이글스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려 했지만 팔꿈치와 어깨 부상이 잦아들지 않자 2016년 은퇴 수순을 밟았다. 이후 트레이너 공부를 하다 2017년 일본 독립리그 신생팀인 BC리그 도치기 골든브레이브스 팀 투수 코치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한선태(24). 중·고등학교 야구부에서 선수로 뛴 경험이 없다. 독학으로 야구를 배웠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함께 훈련하며 실력을 쌓았다. 고교 1학년 시절 인근 고등학교 야구부를 찾아가 입단 테스트를 받은 적이 있지만 기존 선수들의 훈련량을 따라가기 힘들 거라며 거절당했다. 스물한 살에 군에 입대했고, 제대한 다음에는 독립리그 팀인 파주 챌린저스에 입단하게 된다. 파주 챌린저스 소속으로 상대했던 SK 2.5군 선수들과의 연습 경기에서 찍은 최고 구속이 144km. 이후 몇몇 프로팀으로부터 입단 문의를 받았지만 비선수 출신이란 문턱을 넘기 어려웠다. 한선태는 올시즌 일본 독립리그인 도치기 골든브레이브스에서 뛰었다. 그 팀의 투수 코치인 김무영 코치의 지도를 받으며 급성장했다. 8월 20일, 한선태는 수원케이티위즈파크에서 진행된 2019 신인 드래프트 해외파 트라이아웃에 참가했다. KBO 이사회의 규약 개정으로 비선수 출신도 프로에 입단할 수 있는 문이 열렸기 때문이다. 트라이아웃에서 그가 보인 최고 구속은 145km. 팀에 소속돼 야구를 한 기간이 2년여에 불과한 터라 그의 등장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9월 10일, 2019 KBO 신인드래프트 현장. 한선태는 10라운드 95번째 순위로 LG 트윈스의 지명을 받았다. KBO 역사상 최초의 비(非) 선수 출신이 탄생한 순간이다.

신인드래프트가 열리고 있을 때 한선태는 일본에 머물고 있었다. 9월 9일 일본 독립리그 시즌이 마무리된 터라 경기에 대한 부담 없이 생중계되는 드래프트 현장에 집중했다. 당연히(?) 상위 라운드에서는 한선태의 이름이 불리지 않았다. 드래프트는 9라운드를 넘겨 10라운드로 향했다. 삼성 라이온즈에서 타임아웃을 선언했다. 한선태는 초긴장 상태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삼성 구단 관계자의 입을 집중했다. “삼성 라이온즈에서는 장충고 김연준 선수를 지명하겠습니다.” 역시나 였다. 그 다음은 한화 이글스. 한선태는 다시 기대를 부풀렸다. 그러나 한화는 연세대 박윤철을 호명했다.

“넥센도 다른 선수(홍익대 김주형)를 지명하고 LG 순서가 됐을 때는 무릎을 꿇고 기도했어요. 제발 제 이름을 불러달라고요. 그런데 ‘일본 독립리그’라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일본 독립리그 출신은 하재훈 선수와 저 둘 뿐인데 하재훈 선수는 이미 SK에 지명됐거든요. ‘아, 됐다! 진짜 내 이름이 불리는구나’ 싶어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솔직히 아직 믿기지 않아요. LG 유니폼을 입기 전까진 실감이 안 날 것 같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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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독립리그 마운드에 올랐던 한선태. 이젠 LG 트윈스 유니폼을 입고 공을 던질 수 있게 됐다.(사진=한선태 제공)>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한선태의 목소리는 하늘을 날고 있는 듯 했다. 95번째 순위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마지막 100번째에 지명됐다고 해도 그는 뛸 듯이 기뻐했을 것이다.

“KBO 트라이아웃에 참가했을 때는 상위 라운드에도 지명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제가 비선수 출신이잖아요. 그 부분이 프로팀 관계자 분들한테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10라운드까지 기다려보려 했습니다.”

한선태는 9일, 시즌 마지막 날 같은 팀 동료였던 무라타 슈이치(38)의 은퇴식에 참석했다. 2003년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에서 데뷔 후 요미우리에서 프로 생활을 마무리했던 무라타는 일본 프로야구의 대표적인 강타자 중 한 명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 대표팀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세대 교체를 천명한 요미우리에서 방출 통보를 받은 후 올시즌 독립리그에서 뛰었고 골든브레이브스에서 한선태와 한솥밥을 먹게 된 것이다.

“무라타 선수가 일본 프로팀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했지만 입단 제의를 받지 못하자 이번에 아예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어요. 어제 우리 팀에서 그 선수의 은퇴식을 마련해줬거든요. 한국의 이승엽 선수와 같은 존재인데 독립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끝내는 게 아쉬워 보였습니다.”

파주 챌린저스에서의 야구팀 생활이 전부였던 한선태한테 일본 독립리그 생활은 어떤 형태로 다가왔을까. 그는 “재미있었다”면서 김무영 코치 얘기를 꺼낸다.

“코치님 덕분에 야구를 많이 배웠어요. 야구를 독학으로 배운 터라 지도를 받은 경험이 없었거든요. 코치님이 투구폼 교정을 해주셨어요. 이전에는 제가 허리를 구부리고 던졌는데 코치님이 킥할 때부터 그런 폼으로 던지면 구속을 올릴 수 없다고 지적하시더라고요. 코치님이 허리를 세우고 던지라고 해서 그걸 연습했고 한국에서 트라이아웃을 실시했을 때 코치님이 가르쳐주신 투구폼으로 공을 던졌습니다. 킥을 할 때 안정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중심이 흔들리지 않으니까. 시끄럽고 요란했던 투구폼이 훨씬 단순해진 셈이죠.”

한선태는 KBO 트라이아웃이 실시됐을 때 스카우트들로부터 구속은 나오지만 변화구 등 가다듬어야 할 구종이 많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이와 같은 반응을 김무영 코치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코치님이 그 얘기를 들으시고 당연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제대로 야구한지 2년 밖에 안 된 선수가 어떻게 좋은 변화구를 던질 수 있겠느냐면서요. 저한테 ‘쫄지 말고’ 자신 있게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골든브레이브스에는 3명의 한국인 선수가 뛰고 있다. 한선태 외에 김정택(전 LG), 김선호(전 한화)가 구단에서 마련해준 집에서 함께 생활한다.

“출퇴근할 때마다 김무영 코치님 차를 타고 이동해요. 코치님이 한국 선수들을 더 배려해주고 세심하게 돌봐주십니다. 평생 은인이나 다름없는 분인데 제가 KBO리그 드래프트에 뽑혔다는 소식을 듣고 굉장히 기뻐하시더라고요. 코치님이 좋아하시니까 저도 더 큰 행복함을 느낍니다.”

18개월. 한선태가 제대로 야구를 배우고 시작한 시간들이다. 골든브레이브스에서 나온 최고 구속은 146km. 그러나 제구가 좋은 편은 아니다.

“제가 올시즌 삼진을 22개 잡은 반면에 볼넷이 21개를 기록했어요. 후반기에는 제구가 조금씩 잡혀가면서 볼넷을 3개만 허용했었죠. 아직은 제구가 완벽하진 않아요. 더 노력하고 배워야 하는데 그래서 프로 입단이 기다려집니다. 코치님들로부터 배울 수 있을 테니까요.”

한선태는 LG 지명을 받게 되면서 목표를 수정했다고 말한다. 그 목표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지금까지는 프로팀 입단이 꿈이었잖아요. 이제 그 꿈은 이뤄졌으니 새로운 목표를 세웠어요. 부상 없이 몸 잘 만들어서 1군 마운드에 서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선수 생활하게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 같아요.”

한선태가 LG 지명을 받자 가족들은 물론 지인들로부터 축하 메시지가 쏟아졌다고 한다. 메시지를 보낸 사람들이 누군지를 묻자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한선태의 야구 이력을 보여주는 듯 하다.

“군대 간부님, 선임, 후임들, 사회인야구에서 같이 뛰었던 형들, 파주 챌린저스 구단 관계자 분들, 그리고 파주에서 함께 했던 형들이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주시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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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부천의 한 운동장에서 만났던 한선태. 일본 독립리그 입단을 이뤄냈다며 상기된 표정으로 인터뷰를 했던 모습이 기억난다. 야구하면서 처음으로 돈을 벌게됐다고 좋아했던 그가 소원대로 KOB리그 진출에 성공했다.(사진=이영미)>
 
한선태와의 전화 인터뷰를 마치고 김무영 코치한테 연락을 취했다. 김 코치의 목소리도 한껏 들떠 있었다.

“정말 기뻐요. 마치 제가 프로에 지명 받은 것 처럼이요. 골든브레이브스가 작년에 만들어진 신생팀인데 이 팀에서 프로에 간 건 선태가 처음입니다. 우리 팀 1호 프로 선수가 된 것이죠.”

김 코치는 한선태의 독특한 투구폼을 고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한다.

“투구폼이 이상했지만 공은 정말 좋았어요. 투구폼을 수정하면 그 공이 더 좋아질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허리 굽은 걸 지적했었죠. 선태가 잘 받아들였고 엄청난 훈련을 반복했습니다. 야구를 제대로 배운지 얼마 안 된 터라 이해도가 떨어진 편이지만 선태는 노력과 성실함으로 극복해 나갔어요. 선태는 신기한 선수입니다. 10년 넘게 투수만 해온 선수도 145km를 못 던지는데 선태는 가볍게 그 선을 넘어섰거든요. 저도 선태처럼 비선수 출신을 가르친 게 처음이라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선태가 트라이아웃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으로 향했을 때 마치 제 자식이 시험 보러 간 것 마냥 긴장되더라고요. 다행히 좋은 결과로 마무리돼 행복하네요(웃음).”

김 코치는 아직은 한선태가 야구의 뜨거운 맛을 보지 못했다고 솔직한 생각을 밝혔다. 실력으로만 평가받는 프로에서 한선태가 어떻게 생존해갈지 가늠이 안 되지만 미리 겁먹지 말고 도전해 나갔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선태와 같은 배경을 가진 선수가 또 나올까 싶어요. 뉴스감이죠. 하지만 이젠 ‘비선수 출신’이란 꼬리표를 떼고 경쟁의 정글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저도 독립리그에서 뛰다가 처음 소프트뱅크에 입단했을 때 한없이 위축되고 자신감이 떨어졌거든요. 쟁쟁한 선수들 사이에서 기가 죽었던 거죠. 선태는 그런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합니다. 워낙 배짱이 두둑한 선수라 잘 이겨낼 것이라고 믿어요.”

김 코치는 한선태가 자신의 꿈을 대신 이뤄줬다고 말한다. 어떤 꿈이냐고 물었더니 이런 얘기를 곁들인다.

“저도 한국 프로팀에서 뛰고 싶었어요. 그 꿈을 이루지 못했는데 선태가 해냈습니다. 그래서 선태한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이별은 아쉬움이 남기 마련인데 선태는 박수치면서 보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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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일본 후쿠오카에서 만났을 당시의 김무영 코치. 김 코치의 야구 인생도 깊은 굴곡을 이루고 있다. 지도자 생활의 첫 발을 내딛은 팀에서 만난 한선태가 KBO리그 진출의 꿈을 이룰 줄이야.(사진=이영미)>
 

<이영미 기자> 

 

 

출처 이영미칼럼 https://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380&aid=0000001173&rc=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