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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손흥민이 말한 '재미'와 벤투의 '무표정'

작성자 : 커리어셀 작성일 : 2018-09-11 조회수 : 472

국가대표팀 평가전
한국 v 코스타리카 매치 리뷰
벤투 감독은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다.
“재밌다."

"지루한 경기도 있고, 재밌는 경기가 있는데 오늘은 모두 동료를 위해 열심히 뛰는 게 보였다. 90분을 뛰는 게 쉬운 건 아니지만 재밌었다. 이런 축구를 계속 하고 싶다. 그렇게 하려면 한 팀이 돼야 한다. 오늘 같은 정신력과 뛰는 양을 선수들이 잘 인지하면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대표팀의 새 주장 손흥민이 코스타리카 전을 마치고 말했다. 경기내용과 결과 모두 좋았지만, 손흥민의 발언에서 더 큰 메세지가 전해졌다. 그를 비롯한 여러 선수들이 이번 경기에 대해 "재밌다."라고 말했다. 갑자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난 월드컵과 최근 아시안게임에서 경기를 통해 '재미'를 느낀 선수가 있었을까?"

물론 공식 대회와 친선전에 따른 차이가 있지만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하는 경기에서 선수들이 '재미'를 느꼈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모든 경기에는 준비 과정이 있다. 파주NFC에 입소한 순간부터 코스타리카 전 킥오프 휘슬이 울리기 전 까지의 모든 시간은 경기를 위한 과정이다. 벤투 감독의 새로운 대표팀은 지난 3일 소집되어 이제 막 첫번째 경기를 치렀다. 훈련과 미팅 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여 벤투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텝들은 선수들에게 많은 것을 전달했을 것이다.

코칭에서 중요한 것은 '이해'다. 그런데 그 이해도는 누가, 언제,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 코칭스텝의 메세지가 선수에게 잘 전달되면 선수도 그 과정에서 재미를 느낀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재미는 경기로 이어지고 그 과정이 반복되면 커다란 신뢰가 쌓인다. 

"재밌다." 라는 표현은 이제 막 출범한 새로운 대표팀에 그 어떤 것보다 긍정적인 단어다. 

 

이재성은 벤투 호의 첫번째 골을 기록했다.

# 전반전이 더 좋았다.

65%의 높은 공 점유율을 기록했지만 단순히 공을 오래 점유하기 위한 점유는 아니었다. 활발한 좌우 전환과 간결한 터치에 이은 빠른 공격은 이동하는 공 만큼 코스타리카 선수들을 뛰게 만들었다. 4231 포메이션의 3선에 배치된 기성용과 정우영이 팀의 운전대를 잡았다. 두 선수 모두 공을 다루는 능력이 우수하기에 코스타리카의 전방 압박을 벗어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전반 34분 페널티킥을 만든 과정처럼 과감한 방향 전환과 3선에서 낮은 높이로 빠르게 날아가는 중장거리 패스는 전반전 대표팀이 보여준 가장 위협적인 패턴이었다. 

물론 기성용과 정우영의 우수한 킥력이 가장 빛났다. 하지만 전방에서 동선을 좌우로 넓게 흔들어준 공격 유닛들의 활발함이 있었기에 가능한 패턴이었다. 특히 1년 만에 대표팀에 복귀한 지동원은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했지만 부지런한 전방 활동으로 상대의 수비 블록을 흔들었다. 

지공 상황에서는 2선 자원들의 포지션 체인지가 잘 이루어졌다. 손흥민, 남태희, 이재성은 중앙과 측면을 활발하게 오고갔지만 동시에 같은 지역에 머물지 않았다. 가장 잘한 것은 서로 상황에 따라 템포를 맞췄다는 점이다. 한 명이 침투하면 다른 두 명도 다른 방향으로 속도를 올려 침투했고, 한 명이 템포를 늦춰 방향을 잡으면 다른 두 명도 각각 비어있는 지역으로 이동했다. 그러다보니 서로 동선이 겹치지 않아 좋은 형태가 만들어졌고 이는 곧바로 이재성과 남태희가 만든 하모니처럼 위협적인 콤비네이션으로 연결됐다. 

김영권과 장현수로 조합된 센터백과 정우영, 기성용의 미드필드는 공수 양면에서 팀의 튼튼한 코어라인이 되었다. 이 네 명은 서로의 플레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보였다. 바로 옆에 위치한 동료 쪽에서 실수가 발생해도 바로 대처할 수 있는 위치에서 플레이에 관여하고 있었다. 전반전 거의 모든 상황에서 코어라인의 네 명은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줬는데 덕분에 대표팀의 팀 밸런스가 준수하게 유지됐다. 

풀백 포지션도 좋았다. 홍철과 이용은 코어라인에서 만든 점유율을 믿고 높은 위치까지 전진했다. 이들은 크로스는 물론 가운데 위치한 동료 선수들의 발 밑에 정확한 패스를 제공하며 중앙과 연결 고리를 만들기도 했다. 크로스 할 것인지, 가운데로 연결하여 콤비네이션을 할 것인지에 대한 구분이 분명했고, 그 판단들 역시 괜찮았다. 무엇보다 이들의 크로스에는 분명한 목적지가 있었다. 바쁜 상황에서도 고개를 들어 상황을 보고 집중해서 크로스를 올렸다. 홍철과 이용은 좋은 스타트를 끊었다.

전반전은 간결했고 속도감이 있었다. 후반 시작과 동시에 기성용이 빠지고 김민재가 센터백으로 투입되며 장현수가 미드필드로 전진했다. 포메이션은 전반과 동일했지만 코어라인의 변화는 팀 스타일을 변화시켰다.

전반전에 비해 중장거리 패스의 비율이 적어졌다. 장현수는 3선에서 가까운 동료에게 공을 쉽게 연결하는 것을 선호했다. 그러다보니 중원에서 진행되는 패스의 평균 길이가 전반보다 짧아졌다. 자연스럽게 한 칸 위에 위치한 공격 유닛들의 스프린트 횟수와 거리도 줄어들었다. 비교적 공을 잘 주고 받는 느낌은 있었지만, 전반전에 비해 후반전이 시원시원하게 느껴지지 않은 이유이다. 후반 32분 빠른 공격을 통해 남태희의 훌륭한 골이 터졌지만, 후반전 대표팀의 공격 루트는 전반전에 비해 효율성이 떨어졌다. 

 

대표팀에 복귀한 남태희 역시 경쟁력 있는 모습을 보였다.

# 두 가지 긍정 요소

벤투 감독의 성공적인 데뷔전이었다. 첫 경기에 대한 부담이 있었겠지만 선수들의 동기부여도 강했고 월드컵 독일 전 승리,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에너지도 그대로 이어졌다. 실제로 코스타리카 전에 대해 불만을 갖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물론 아쉬운 부분은 있었지만 90분간 치러진 경기 속에는 긍정적인 요소가 훨씬 많았다.

우선 벤투 감독이 강조한 것처럼 대표팀은 전환 속도에서 우수한 모습을 보였다. 선수들의 의욕이 높았던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공격에서 수비로 또는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 될 때 위치별로 자신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한 가지 더 있다면 속공과 지공에 대한 구분이 확실했다는 점이다. 특히 이 부분은 전반전에 잘 표현되었는데, '다같이 빠르게' 혹은 '다같이 천천히' 의 느낌으로 효과를 봤다. 속공 상황이라면 공 보다 앞에 있는 선수들은 빠르게 스타팅 포인트를 잡아야한다. 내가 패스를 받을 확률이 적어도 스프린트를 시작하면 옆에서 같이 뛰는 동료에게 더 많은 시간과 공간이 주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지공 상황이라면 혼자 갑자기 급하게 속도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혼자서 움직임을 갖는 것보다 여러 명이 동시다발적으로 액션을 취할 때, 상대 수비의 시선이 유도되며 블록이 무너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대표팀은 지공에 적합한 세밀함을 갖춘 우수한 2선 공격 유닛을 보유하고 있다. 벤투 감독의 첫번째 관문이 될 내년 아시안컵에서 아마도 대표팀은 지공 상황을 더 많이 마주할 가능성이 높다. 

벤투 감독의 데뷔전은 훌륭했다. 두 골이 터졌지만 그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팬들의 기대감은 커졌지만 벤투 감독은 차분하고 신중하게 칠레 전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2022년 카타르까지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2-0 의 스코어나 활발한 경기 내용보다 눈이 가는 곳은  선수들이 말한 "재미", 그리고 벤투 감독의 무표정이다.

그 두가지 요소가 앞으로 대표팀을 더욱 흥미롭게 만들 것 같다.